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정말 그 말을 믿으시나요?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결론이 나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맞서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는 이야기,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 공감이 먼저였습니다
혹시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시기"를 지나본 적 있으신가요? 줄리 & 줄리아는 바로 그 감각을 영화 내내 건드립니다.
영화 속 줄리 파월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공무원 생활이었습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하고, 남편의 제안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요리연구가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 524개를 1년 안에 전부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에서 이미 공감이 앞섰습니다. 제가 직접 연구를 진행할 때도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 싶은 시기가 반드시 찾아오거든요. 줄리가 블로그를 시작하고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글을 쓰는 장면이 단순한 열정의 묘사가 아니라, 버텨내는 과정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특이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인물의 배치를 의미하는데, 줄리 & 줄리아는 1949년의 줄리아와 2002년의 줄리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줍니다. 교차 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장면을 번갈아 배치해 주제적 연결감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두 여성이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편집 방식 자체가 둘의 공통점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반복이라는 전략, 작은 기록이 쌓이는 방식
매일 요리를 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다는 게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막상 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줄리의 도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반복 자체였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매일 레시피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하고, 태워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스크린을 채웠습니다. 이른바 콘텐츠 아카이빙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콘텐츠 아카이빙이란 경험이나 정보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축적해 나가는 행위로, 단기간의 결과보다 장기적인 자산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실험이나 업무에서 비슷한 감각을 경험합니다. 눈에 띄는 성과 없이 데이터를 쌓고, 방법론을 바꾸고, 다시 쌓는 반복.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그게 결국 차이를 만들더라고요. 줄리의 기록이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로 이어지는 흐름이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아니라 어렴풋이 납득이 갔던 건, 그 과정의 밀도가 영화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줄리아 차일드의 이야기도 비슷한 결을 가집니다. 프랑스 요리를 처음 접한 이후, 요리학교에서 남성 전문가반으로 옮겨 밤낮없이 연습하고, 미국인을 위한 프랑스 요리책 집필에 8년을 쏟습니다.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서요. 줄리 & 줄리아가 성장 서사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장 서사란 주인공이 시련과 반복을 통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부터 완성된 실력이 아닌, 반복을 통해 역량을 키워갔습니다.
- 외부 인정보다 내면의 동기가 지속성을 만들었습니다.
- 실패와 좌절이 포기로 이어지지 않았고, 방향 수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공 서사의 그늘, 이 영화가 아쉬운 지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모두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감동받다가도, 어느 순간 '이 서사가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줄리는 1년의 도전 끝에 뉴욕 타임스 인터뷰를 하게 되고, 줄리아는 8년 만에 책을 출간합니다. 두 사람 모두 결국 자신의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과정이 훨씬 복잡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의 회복탄력성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데는 개인의 의지 외에도 사회적 지지 환경, 기회의 타이밍, 외부 네트워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여기서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실패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줄리 & 줄리아에서도 줄리아가 팬 친구에게 보낸 레시피가 우연히 출판사에 전달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노력 외에 운과 연결고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영화 스스로 보여주는 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오히려 솔직한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걸 일부나마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 영화가 성공 서사를 과도하게 미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에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력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반복이 삶을 바꾼다는 것
그렇다면 이 영화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특별한 재능보다 꾸준한 반복'이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요리를 늦게 시작했고, 줄리 파월은 작가가 되지 못한 채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둘 다 완벽한 출발점이 아니었습니다.
모티베이션 이론 중 내재적 동기 개념이 여기서 유효합니다. 내재적 동기란 외부 보상이 아닌 활동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나 의미감으로 움직이는 힘을 말합니다. 영화 심리학 연구에서도 관객이 성장 서사에 공감하는 이유로 내재적 동기의 시각화가 자주 언급됩니다(출처: 영국영화협회). 줄리와 줄리아 모두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도, 거절당했을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건 외부 인정이 아닌 내면의 동기에서 나온 힘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눈앞의 성과가 없는 시기에 계속하게 만드는 건 대단한 각오보다, 오늘 하루 그냥 하나 더 하는 습관에 가까웠습니다. 줄리가 하루 레시피를 완성하고 블로그에 올리는 행동이 거창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안타깝게도 실제 줄리 파월(Julie Powell)은 2022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 속 도전이 현실이었고,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줄리 & 줄리아는 완벽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계속 해나가는 것'이 결국 무언가를 만든다는 걸 조용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나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