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77 # 주먹왕 랄프 리뷰 (캐릭터 아크, 역할 전복, 자기 수용) 악당이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주먹왕 랄프는 30년째 게임 속에서 건물을 부수는 악당 캐릭터지만, 그가 진짜 원했던 건 역할의 교체가 아니라 단 한 마디의 인정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욕망이 이 영화를 단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만들어 줍니다.30년짜리 악당이 짊어진 것들 (캐릭터 아크)주먹왕 랄프는 픽스잇 펠릭스 주니어라는 아케이드 게임 속 악당 캐릭터입니다. 아케이드 게임이란 오락실에 설치된 동전 투입식 비디오 게임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게임들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살아간다는 설정을 취합니다. 랄프는 매일 건물을 부수고, 고쳐 펠릭스는 그것을 수리하며 메달을 받습니다. 결과는 .. 2026. 4. 13. # 히든 피겨스 리뷰 (차별 구조, 연대, 증명) 실력만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받는다는 말, 정말 믿으시나요? 저는 연구직에 있으면서 이 말을 꽤 오래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히든 피겨스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편리한 착각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면, 실력은 증명할 무대조차 없는 것입니다.1960년대 NASA가 숨겨놓은 차별 구조영화의 배경은 1961년 미국과 소련이 우주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냉전 시대입니다. 냉전이란 군사적 직접 충돌 없이 이념과 기술 경쟁으로 대립하던 시기를 뜻합니다.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한 뒤, 미국은 기술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머큐리 계획을 추진합니다. 머큐리 계획이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프로그램으로, 우주비행사를 지구 궤도에 .. 2026. 4. 12. # 드림걸즈 실화 (리드보컬 교체, 플로렌스 발라드, 슈프림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연구를 하다 보면 같은 조건에서 누군가는 좋은 결과를 얻고 누군가는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상황을 종종 마주칩니다. 그럴 때마다 드림걸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결국 무대 밖으로 밀려났던 에피 화이트.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그 실화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리드보컬 교체: 실력보다 시장성이 먼저였다드림걸즈의 실제 모티브가 된 그룹은 모타운 레코드 소속의 슈프림스입니다. 1960년대 미국 팝 시장을 지배했던 이 그룹은 처음에 플로렌스 발라드, 다이애나 로스, 메리 윌슨, 바바라 마틴의 4인조로 출발했습니다. 초기 리드보컬은 플로렌스 발라드였습니다. 솔 뮤직에 가까운 짙고 강렬한 음색을 가졌던 그녀는 분명히.. 2026. 4. 12. # 심야식당 리뷰 (옴니버스, 위로 공간, 인간관계)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문을 여는 식당이 있습니다. 메뉴판에 적힌 음식은 단 하나지만, 손님이 원하는 건 뭐든 만들어줍니다. 저는 이 설정을 듣는 순간, 현실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인데도 왜인지 그리워졌습니다. 그게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였습니다.옴니버스 구조가 담아낸 어른들의 삶2015년 개봉한 영화 심야식당은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입니다. 옴니버스란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하나의 공통된 배경이나 주제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긴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 연결 고리는 바로 심야식당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찾는 손님들입니다.영화는 크게 세 편의 이야기로.. 2026. 4. 12. # 카모메 식당 리뷰 (느림의 철학, 문화적 교감, 힐링 영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연구직으로 일하면서 저는 '기다림'을 일종의 비효율로 여겨왔습니다. 결과가 늦어지면 불안해지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부터 쌓였습니다. 그런데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그 조급함이 오히려 제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가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동안 손님 한 명 없는 식당을 태연하게 꾸려가는 사치에의 모습이, 처음엔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볼수록 불편하게 와닿았습니다.느림의 철학, 조급함과 비교해보니 달랐습니다일반적으로 식당 창업은 초기 3개월 안에 손익분기점을 맞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BEP란 총수입과 총비용이 일치하는 지점, 즉 적자도 흑자도 아닌 균형점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음식업 창업 후 1년 내 폐업률.. 2026. 4. 11. # 어느 가족 (혈연, 도덕적 딜레마, 가족의 정의)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이 상을 받은 영화가 다루는 건 절도, 성매매, 유기된 시체 6구입니다. 저는 이 조합이 너무 이상해서 처음엔 그냥 자극적인 설정의 범죄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건 범죄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혈연 없는 가족이 던지는 도덕적 딜레마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일관되게 가족 서사를 다룹니다. 여기서 가족 서사란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개념에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어느 가족은 그 질문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 작품입니다.시바타 가족을 구성하는 인물들은 단 한 명도 법적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할머니 하츠에, 아들처럼 지내는 오사무, 아내 노부요, 손녀처럼 불리는 아키, 그리고 쇼타. 이들은 각.. 2026. 4. 11. 이전 1 2 3 4 ··· 13 다음